이 글들은 “빛과 소금,” “목회와 신학,” “그말씀”등에 게재되었던 글들을 약간 수정, 보완한 내용입니다.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며 기꺼이 순종하는 일에 도움이 되길 기도합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 - 이루어 나가는 구원

Author
Admin
Date
2017-03-17 19:13
빌립보서 2장 12절

이루어 나가는 구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에, 그 삶 속에 감격과 흥분 속에 충만하게 지속되지 못하는 아쉬움에 대해 그레이엄 스크로기(Graham Scroggie) 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절은 경험했지만, 오순절은 경험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사죄는 경험했지만, 능력은 체험하지 못한 채; 용서는 경험했지만, 교제는 누리지 못하는 채; 출애굽은 했지만 복된 약속의 땅에는 이르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들은 아직도 좌절과 불만족의 광야를 헤매이고 다닌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12에서 “너희 구원을 너희가 이루[어 나가]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우리 믿음의 초석이 되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의 가르침과 겉으로 상충되어 보인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1) “이루어 나간다”라는 단어의 의미; 2) 문맥; 그리고 3)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바로 이해할 때에 얻을 수 있다.

첫 번째로, 여기 구원을 이루라라는 표현은 광산에서 일할 때에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광산에 가서 땀을 흘리며 일을 함으로 숨겨져있는 좋은 보석들과 유용한 금속들을 하나씩 하나씩 캐내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에 이 표현이 사용되었다. 우리의 영적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구원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많은 보배스러운 것들을 우리 속에 공급하시고 채워 주셨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내재하시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또한 그리스도의 지혜가 풍부하게 우리 속에 감춰져 있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풍성한 사랑이 우리 속에 부어져 있다. 그리스도의 인내가, 그리스도의 거룩함이 우리 속에 주어져있다. 바울이 의미하는 바는 이러한 영적 보화들을 밖으로 끄집어 내어 생활가운데 보여줌으로 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아! 저속에 그리스도가 살아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영어의 표현을 빌어 설명을 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즉, 이 표현은 work for your salvation“ 이 아니라 ”work out your salvation" 이다. 즉 구원을 얻기 위해서 애를 쓰라는 뜻이 아니라 이미 얻은 바 구원을 밖으로 표출해 내며 살아가라는 뜻이다.

두 번째로는 이 말씀이 나타나고 있는 문맥을 이해해야 한다. 이 말씀의 앞부분, 즉 12절 상반절은 “그러므로“라는 표현으로 시작된다. 즉, 바로 그 앞에 있는 빌립보서 2:5-11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으며, 세상의 빛이 되는 삶을 살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는 표현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많은 분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어려운 정도가 아니고 아예 불가능한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모범이 없고서는 100%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그 모습을 따라가도록 권면하며, 이제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 가능한 삶이요, 더 더군다나 풍성한 삶인 것을 교훈해 주고 있는 것이다.

뒤따라 오는 13절은 (우리 성경에는 번역이 생략되어 있지만) 원문에 의하면 “왜냐하면” 이라는 표현으로 시작이 되고 있다. 즉,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되는 이유는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기 때문인 것이다. 이 말씀 중에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즉, 이미 구원을 받은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고 하는 것은 이미 우리 속에서 행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순종함으로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성경은 구원의 세가지 측면에 대해 교훈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먼저는 과거적인 측면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죄씻음을 받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김을 받게 되는 순간적인/즉각적인 측면이 있다 (골 1:13-14).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순간이 구원을 체험하는 순간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이 측면은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고 하는 과거형으로 표현된다 (엡 2:1). 그래서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소유했고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에 이미 참여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엡 2:5-6).

또한 우리가 경험한 구원에는 미래적인 측면도 있다. 즉, 우리는 아직도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의 몸도 영광스러운 몸으로 바뀌는 소망의 순간을 고대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엡 4:30). 그러기에 우리는 이미 구원을 경험했지만 또한 동시에 앞으로 오는 완벽한 구원을 우리는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구원의 과거적인 측면과 미래적인 측면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 즉, 과거적인 측면에서의 구원을 받고 영생을 소유한 사람만이 미래의 몸의 구속을 경험할 수 있으며. 또한 과거적인 측면에서의 구원을 받고 영생을 소유한 사람은 모두가 다 예외 없이 미래적 측면의 구원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바로 이 둘 사이에 놓여 있다. 그 가운데서 살아 가면서 죄와 씨름하며, 영적 전쟁의 패배 속에 신음하기도 , 승리의 쾌거를 주님 앞에 불러 드리기도 한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는 이 영적 싸움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모든 죄악을 다 버리고 완벽한 몸으로 몸의 구속까지 경험하게 될 영광스러운 날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우리들을 향해서, 바울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구원의 현재적인 측면, 즉 과정적인 측면을 “구원을 이루[어 나가]라”라는 표현으로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의 힘으로 구원을 얻기 위해서 애쓰라는 뜻이 아니다. 이미 우리가 받은 바 이 구원, 영광스러운 미래의 소망을 보장받은 이 구원을, 오늘을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에서 우리 몸 밖으로 끄집어 내서 남들이 볼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받았다고 하는 그 구원이 참된 구원인지 아니면 말로만 하는 가짜 구원인지를 보여달라고 하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의 역할을 잘 수행해 나가는 삶의 모습이 곧 내 속의 구원을 밖으로 표출해 나가는 삶, 즉 구원을 이루는 삶인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을 설명해주는 에베소서 2:10, 그리고 야고보서 2: 26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는 말씀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해 얻게 되는 구원의 과거적, 미래적, 그리고 현재적인 측면의 균형을 명쾌하게 보여주는 말씀이기도 하다.

우리는 부활절과 함께 오순절은 경험한 자답게 살아가야 한다. 사죄뿐이 아니라 능력도, 용서뿐이 아니라 주님과의 깊은 교제도 경험하며 살아가야 한다. 좌절과 불만족의 광야를 헤매이고 다닐 때가 아니다. 출애굽뿐이 아니라 복된 약속의 땅 위를 활보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삶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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