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들은 “빛과 소금,” “목회와 신학,” “그말씀”등에 게재되었던 글들을 약간 수정, 보완한 내용입니다.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며 기꺼이 순종하는 일에 도움이 되길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 - 주님께서 주신 백지 수표?!

Author
Admin
Date
2017-03-17 19:08
요한복음 15장 7절

주님께서 주신 백지 수표?!

스스로 꾀가 많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 하나님께 질문을 드린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백만 년이라는 새월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세요?” 하나님께서는, “백만 년이 나에게는 마치 일 초와 같지”라고 답하신다. 이에, “백억 원이라는 돈이 하나님께는 얼마나 큰 돈으로 느껴지세요?” 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숨기고 있는 요구 사항으로 접근해 간다. 하나님께서는, “백억 원이라는 돈도 나에게는 일 원 정도 밖에 안되지”라고 이 사람이 기대했던 바대로 답을 하신다. 이제 이 사람은 흑심을 드러내며, “하나님, 저에게 일 원만 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대수롭지 아닌 듯이 요청을 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럼, 주고 말고. 일 초만 기다려”라고 답하신다.

기도를 드릴 때에 우리의 마음 가짐에 대한 예화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뭔가를 빼앗아 오려는 듯한 분위기가 기도의 분위기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기도라고 하는 것,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특권 중의 특권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를 쏟아부으시는 창구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기도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를 쏟아부으시는 창구이다. 그러기에 주님의 은혜를 갈구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암송, 또 애송하는 말씀 중에 하나가 요한복음 15:7 말씀이 아닌가 싶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마치 백지 수표를 주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구절이다. “여기 빈 칸에 무엇이든지 원하는 액수를 적어 넣으면, 적어 넣는 만큼 내가 주겠노라“ 식의 이해가 언뜻 가능하게 보인다.

그러나 성경을 이해함에 있어서 늘 명심해야 하는 것은 본문의 문맥을 살펴가면서 이해해야 바른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요한복음 15:7의 말씀은 실상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앞부분은 “거하면” 이라는 조건절로 끝이 나고 있으며, 두 부분 사이에 “그리하면“이라는 접속사가 위치하면서, 뒷부분의 약속으로 이끌어 주고 있다. 즉, 앞의 조건이 성립될 때에 뒤의 약속이 성취된다고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약속”의 구조이다. 조건은 종속절로, 약속은 주절로 구성되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문법 현상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문법의 이해와는 달리 이 구절의 조건과 약속은 서로가 그 무게를 거의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들이 주님 안에 거하고 또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해야 한다고 하는 것을 그 다음에 나오는 약속을 얻어내기 위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행위 정도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 이 조건절 속에 담겨져 있는 내용은 사실상 신앙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님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두가지 면에서 이 사실을 좀 더 상세히 이해해 보자. 먼저, 주님께 간구해서 무엇을 얻어내는 것보다 주님과의 바른 인격적인 관계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를 그저 많은 종교 중의 하나 정도로, 즉 인간의 요구를 만족시켜주는 것을 그 주된 목적과 기능을 삼고 있는 종교 정도로 이해한다면, 그 결과는 기독교의 기복주의로의 전락을 가져오고 말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창조의 주 여호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정상적인 관계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주님과의 인격적인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인격적인 교제를 지속시켜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과 대화하며 그 분의 원하시는 바를 물어가며, 그 뜻에 순종해드리는 생활인 것이다. 즉, 주님의 숨결을 들을 수 있는 귀, 주님의 심경을 느낄 수 있는 마음, 주님의 의도를 헤아릴 수 있는 판단력, 주님의 계획을 실천해 드리고자 하는 의지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곧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요, 주님의 말씀이 그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다. 주님과 같이 생각하며 주님과 같이 행동하는 모습이 곧 7절 상반절에서 그려주고 있는 그림이다.

두 번째로 보아야 하는 점은, 이 조건이 이루어지게 되면, 즉 우리가 제자로서의 인격적 교제 속에 깊이 들어간다고 한다면, 우리의 간구하는 바가 다 이루어진다고 하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왜냐하면 주님과 깊은 인격적인 교제를 경험하고 있는 제자가 간구하는 내용은 주님의 뜻과 부합하게 되기 때문인 것이다.

이것은 영적 성숙의 가장 깊고 높은 단계라고 생각이 된다. 성령 충만과 영적 성숙에는 차이가 있다. 성령 충만은 짧은 시간 내에도 가능하다. 그러나 영적 성숙에는 시간이라고 하는 요소가 개입되게 된다. 성령 충만은 성령께서 계시해 주시는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으로 이루어진다. 영적 성숙은 철저한 순종의 반복적인 훈련으로 인격 속에 차근차근히 이루어지게 된다. 잠시 뜨거워진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며 그 뜻을 헤아리고 순종하는 인격적 훈련이 영적 성숙을 가져다 준다.

(바울의 경우를 예로 본다고 하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바울은 곧 성령 충만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바울이 이미 알고 있었던 구약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렌즈를 가지고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또한 부활하신 주님과의 사적인, 그리고 인격적인 교제를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그는 영적 성숙을 경험하게 된다.)

주님과 우리 사이의 인격적인 교제는 물을 빨아들인 스폰지와 유사한 점이 있다. 물과 스폰지가 구별이 안되는 것과 같이 주님의 말씀이 우리 인격 속에 깊이 배이게 되면, 우리의 생각이 주님의 생각과 같아지게 되며, 우리의 간구하는 바가 주님의 뜻하시는 바와 부합하게 되는 것이다. 15:9-10은 사랑과 순종의 관계에 대해 말씀한다. 요한복음 14:15에서도 주님을 향한 사랑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표현된다고 말씀하신다. 즉,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과의 교제를 즐기는 제자들은 그 생각이 주님을 닮아가는 특권을 누리게 되며 그들의 간구하는 바가 주님의 뜻과 부합됨으로 기도를 드린 그대로 그 응답을 경험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기도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나의 삶 속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 보는 시간이요 대화의 공간이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15장 7절 말씀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액수를 적어 넣기만 하면 되는 백지 수표라고 이해할 수는 없다. 우리의 욕심을 채워주기 위한, 또는 우리의 바라는 바를 무엇이든지 그대로 응답해 주실 것에 대한 약속의 말씀은 아니다.
그러나 반면에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제자들, 성경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한다면, 주님 안에 거하며 그 속에 주님의 말씀이 거하는 제자들에게는 이 말씀은 백지 수표가 될 수도 있다. 감히 우리가 주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정도의 깊이와 높이를 지닌 영적 성숙을 향하는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시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중한 선물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외울 뿐만 아니라, 흠모하며 추구해야 할 말씀이며, 동시에 영적 성숙의 가능성을 향한 우리의 강렬한 염원을 담고 있는 말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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