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들은 “빛과 소금,” “목회와 신학,” “그말씀”등에 게재되었던 글들을 약간 수정, 보완한 내용입니다.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며 기꺼이 순종하는 일에 도움이 되길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4:24 - 신령과 진정으로?!

Author
Admin
Date
2017-03-17 19:07
요한복음 4:24

신령과 진정으로?!

이미 많은 신자들이 익숙해져 있는 개역한글의 “신령과 진정으로”라는 구절은 공예배 시간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기도 시간에 언급되는 표현이다. 그러나 너무 자주 듣기 때문에 그 의미하는 바를 깊이 음미해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 같다. 또한 그 표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어감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를 최대한으로 적절하게 전달해주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있다.

개역한글의 “신령과 진정으로“ 라는 표현을 그저 무심코 듣다 보면, ”신령“이라는 표현은 뭔가 좀 ”신비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기분을 같게 해준다. 또 ”진정으로“라는 표현은 ”우리의 정성을 모아,”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정도의 의미를 연상케 한다. 한글 우리말 큰사전 역시 “신령하다“는 “신기하고 영묘하다”는 의미를, “진정으로”는 “거짓이 없는 애틋한 마음으로“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생활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또한 이 구절은 예배에 대한 주님의 직접적인 교훈인 만큼, “신령과 진정으로”라는 구절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먼저 그 문맥을 이해해보자. 요한복음 4장에서 주님께서는 의도를 갖고, 즉 그 영혼을 구원하실 목적을 갖고,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오신다. 주님께서는 우물가의 대화를 통해 접근하시며 결국은 여인의 죄인된 모습을 드러내신다. 이에 대해 수가성 여인은 예배에 대한 나름대로의 신학적인 질문을 통해 수치와 당황으로부터 빠져나가 보려고 한다. 예배의 대한 주님의 가르침이 결국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찾아오셔서 전달하기 원하시는 메시지라는 사실은 모르는 채 . . .

즉,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 이 땅으로 내려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섭리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직 미완성인 예배를 완성시키시는 것이며, 또한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해 망가져 버린 예배를 고치시며 완전하게 해주시는 것이다. 에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한 참된 예배로 우리를 초대하기 위해 내려 오셨다. 여기 수가성 여인도 참된 예배에 동참시키시고자 하는 것이 주님의 의도이시다.

“신령과 진정으로”라는 표현은 “성령과 진리 안에서”라고 하는 것이 헬라어 원어의 보다 바른 번역이며 또한 바른 신학적인 이해임을 먼저 밝히고 얘기를 계속하도록 한다 (개역개정은 “영과 진리로”로 번역했다). 요한복음 2:13-22에서 주님께서는 성전을 청결케 하신다. 그리고 19절에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는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친히 새 성전이심을 똑똑하게 밝히신다. 즉,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영적인 만남의 장소는 더 이상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 건물이 아니며, 바로 예수님 당신을 통해서만 참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되었음을 가르쳐 주신다. 요한은 뒤따라오는 21-22절을 통해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그 계획에 대한 성취임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는 바로 메시아의 시대가 도래했음은 선포하는 사건이다.

또한 주님께서는 4장의 대화 속에서도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진리 안에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23절)”고 말씀하시면서 “때”가 임했다고 말씀하신다. 즉 약속하신 메시아의 강림을 통해 우리들이 하나님께 직접 예배드릴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가르쳐주신다. 25-26절 역시 이러한 이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메시아께서 바로 이 사마리아 여인 앞에 서 계시며, 메시아의 시대가 이미 도래했음을 선포하고 계시는 것이다.

인류 역사가 경험한 최대의 엄청난 변혁은 바로 이 메시아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이며, 그 결과로 성령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각 사람의 인격 속에 내재하신다는 사실이다. 성령님께서 허락하시는 새 생명을 소유하고 새롭게 호흡을 시작한 사람들만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24절에, 하나님께서는 영이심을 상기시켜 주시고, 메시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배드려야함을 말씀하신다. 우리 영혼들은 영이신 성부 하나님의 영, 즉 성령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유대인들에게는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 성경이 있었다. 즉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자처 했지만, 외식과 형식주의에 사로잡힌 그들의 영혼 속에는 성령의 생명력 넘치는 역사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했지만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 있었다 (마태복음 15: 7-9). 또한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들이었다 (마태복음 23: 23-28). 그러나 메시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일상 생활의 현장 속에 또한 구체적으로 예배드리는 현장 속에 성령의 지배하심과 인도하심이 분명하고도 철저하게 나타나야 함을 주님께서는 촉구하고 계신다.

또한 참된 예배는 진리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말씀하신다. 말씀이 육신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죄인인 우리들로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승리의 부활을 통해 진리이심을 입증해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 바로 진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알게 됨으로, 우리는 진리 안에 거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께서 계시해 주신 하나님의 뜻 또는 진리에 근거한 예배만이 참된 예배인 것이다.

우리의 열심과 분주함만을 가지고는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열심이 있어서 그리심 산에 따로 성전을 세워가며 예배를 드린다고 했지만, 여러 가지 신학적인 오류에 빠져 있었다. 유대인들 역시 열심 있는 척 했지만,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말씀을 왜곡, 변개시켰던 것을 보게 된다 (마태복음 15: 1-6).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모두 그 예배의 결함을 갖고 있었는데, 유대인들의 예배는 특히 성령의 인도하심이 결여되어 있었고, 사마리아인들의 예배에는 특히 진리를 따르는 자세가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진리 안에 거하는 것과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은 메시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예배의 필수 요건이다.
주님께서는 메시아 시대가 이 땅과 역사 속에 도래했음을 선포하시면서 예배의 필수 요소를 교훈하고 계신다.

“신령과 진정으로”는 예배에 대한 단순한 부사적인 표현으로 이해되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이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진리 가운데에 침잠함”을 의미하며, 메시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경험해야 할 또한 바쳐드려야 할 산 제사에 대한 주님의 진지하신 권면으로 이해함이 마땅하다.

다음 주일 예배 시간에라도 “신령과 진정으로”라는 표현을 다시 듣게 될 때에는, 그 의미하는 바가 “성령의 인도하심과 진리에 근거하여”라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라며, 표현 자체를 바꾸어볼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결론적으로 예배는 성자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진리와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에 근거하여, 또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부 하나님께 드리는 삶의 제사임을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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