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앙 간 증 문
배 지 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하나님 나라의 잠재적인 백성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삶의 목표입니다”
전해야 할 복음이 무엇인지 알게 됨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때 아버지께서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교통사고 후 중환자실에서 보름동안 계신 아버지께서는 어머님에게 1남 3녀를 남겨두신채 인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시골에서 성실하게 농사를 지으셨던 아버지셨지만 저희 가정은 예수님을 믿지 않던 가정이였습니다. 그당시 저는 죽음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던 시절이였습니다. 하지만 죽음의 의미를 깨닫기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저를 찾아주셨습니다. 근처 교회의 주일학교 선생님 한분이 매주 저희 집에 방문하셔서 복음을 전하셨고, 쉬지않고 교회에 함께 가기를 청하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기전 겨울, 저의 언니가 저보다 두 달 정도 앞서 중등부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고, 언니의 끈질긴 권유와 주일학교 선생님의 노력으로 저는 주일학교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를 인도해주신 선생님께서는 지금 현재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20년전 그때에도 열심을 다해 저를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예수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3일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장차 다시 오실 예수님을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 사실이 믿어졌었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자리는 하나님 아버지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상을 버리는 삶으로의 전환
예배와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살았었고, 시골의 작은 교회가 저희 집보다 더 편한 곳이 되기도 했습니다. 기도해야 할 제목이 생길때면 자연스럽게 교회에서 기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살았었지만 늘 기쁘게 생활할 수 있었던 이유가 기도의 응답과 함께 예수님의 사랑을 교회를 통해 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언니와 저의 기도제목이였던 어머님께서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다는 고백도 듣게 되었습니다. 명절때면 제사를 지내야했던 저희 가정은 어머님의 결단으로 친척들의 핍박에도 제사상에 절하지 않았으며, 시간이 흐른 후에는 제사상도 차리지 않고 명절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엡 6:6)” 저희 가족들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전환되는 것이 우상을 버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삶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심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선교사라는 비전을 주셨고, 고등학교 졸업과 3년동안의 직장생활 후 고신대학교 국제문화선교학과(구. 선교언어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제가 기도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저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는 컴퓨터전문인 선교회에서 훈련받은 후 태국에 단기 선교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태국 단기 선교를 시작으로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에 계신 선교사님들을 방문하며 꿈을 지켜왔습니다. 선교사라는 꿈을 향해 달려갔던 고신대학교에서 생활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삶이였습니다. 환경과 시간을 모두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들어간 대학교 생활은 저를 많이 변화시켰습니다. 내 생각, 내 감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이 알아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 보다 달다는 표현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선교학 관련 수업을 들을때면 이미 선교사가 된것 같은 기분에 빠져들이기도 했었습니다. 이렇게 하루, 한달, 일년을 공부하면서 선교사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삶을 가득 채워갔습니다. 가슴에 선교의 비전을 품은지 20년이 지나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선교사가 아닌 학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흘러간 세월이 아까울때도 있지만, 모세는 하나님이 쓰시기 전에 애굽의 궁전에서 40년, 광야에서 40년을 보내후 출애굽팀의 리더로 쓰임받았으니 조금더 기다리려고 합니다.
환경을 바라본다면 생각하지도 못할 유학을 결심하게 하셨고, 지금은 그 결심을 실현하게 하셨습니다.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한국이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이 부족했기에 미국에서 배우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고, 2007년 미국에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2010년 가을 Liberty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M. Div.과정에 입학하여 2015년 12월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Miracle” vs “Sign”
하나님을 창조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사건은 오직 은혜로만 된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삶에 ‘Miracle’은 행하지 않으신 듯 합니다(예수님을 믿는 기적을 제외하고). 하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역사하신다는 ‘Sign’은 계속적으로 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의 ‘Sign’이 있었기에 저는 지금 크리스챤으로 살아가고, 앞으로도 그 은혜로만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여전히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미래가 불명확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상처 많은 인생이 불쌍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따라 살지 못하는 것이 불행한 인생이다”라고 어느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인생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기에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복음 전하는 사명대로 살아가는 것이 저의 기쁨이 되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 2:4).”
Liberty 대학원에 M.Div. 과정으로 입학할 당시, 어머님의 고백을 나누고자 합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걱정없이 공부할 수 있을텐데…” 눈물을 흘리시며,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 믿잖아…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시잖아…” 시골에서 홀로 4남매를 키우시던 어머님의 고백이 저의 고백입니다. 선생님의 끈질긴 권유와 가르침, 친구와의 대화, 은혜로웠던 대학생활, 미국유학, 그리고 어머님의 고백이 저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Sign’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꾸준한 선교지 탐방
2003년에는 컴퓨터전문인선교회에서(CTM)에서 훈련을 받아 태국 단기선교(2주간)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이후 2005~6년 2년간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던 모교회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학사관 담당 간사로도 섬겼습니다. 간사로 섬기던 기간 중에는 청년들과 선교적 사명을 나누기 위해 일본, 인도네시아 단기 선교를 다녀오게 되었으며, 국제문화선교학과에서는 학과에서 주관하는 일본 단기선교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2006년 1월에는 중국 선교사님을 방문하여 지하교회의 실상을 보게 되었으며 하나님이 세계 곳곳에서 일하고 계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계속적인 공부
선교사로의 꿈을 꾸면서 2001년 고신대학교 국제문화선교학과(구.선교언어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 이후에 입학한 것입니다. 가정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3년간의 직장생활 동안에도 계속적으로 선교사로서의 꿈을 가지고 살며 가족들의 허락이 있을 때까지 기다린 것이였습니다. 2010년 Liberty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 입학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공부했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는 것이 선교의 첫걸음이라 생각했으며 현실속에 찾아오는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루 하루 기쁨을 잃지 않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라 생각하며 순종하려 노력했습니다.
사역하기
2012년 가을부터 2013년 까지 Korean Baptist Church in Lynch-burg에서 유치부 담당 사역자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 많았던 교회였기에 젊은 목사님들의 자녀들을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수요일 저녁과 주일 저녁 두 번의 예배를 함께 드렸습니다. 40-50명의 어린이들을 25명의 교사들이 수요일과 주일 나누어 섬기며 함께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25명의 교사들과 함께 아이들을 섬긴 경험은 제게 순수한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주는 사랑을 받을 때 마음이 치유가 된다는 교사들의 고백은 섬김의 참 기쁨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골 3:22)” 고 했습니다. 작은 아이들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섬긴 선생님들의 모습은 제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성공이란?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로 계속 교회에서 훈련을 받아왔었습니다. 때로는 평신도로, 때로는 사역자로 교회를 섬기면서 하나님 앞에서의 성공한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특별하게 내세울 만한 사역은 없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삶 가운데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John C. Maxwell은 성공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나를 향한 그분의 소원을 아는 것이다. 내가 가진 최대한의 가능성을 키우며,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씨 뿌리기이다.” 매일의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발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현실적인 문제들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결정내리며 그 결정에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고난에도 불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선택 속에서는 어떤 손해나 고통이 따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을 최우선으로 여길 줄 알아 고난의 길을 선택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능함을 알고 매일 상고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 2:4).”
은혜와 영광교회, 교회 개척이라는 부르심 앞에 겁없이 순종했습니다. 기도로 준비하며 달려온지 벌써 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짧지 않았던 2년 동안 지난 20년의 훈련이 아무 소용없는 것처럼 실패로 넘어지는 경험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예배를 통해 작은 시골 소녀의 손을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대면하고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을 당신의 삶 속으로 초대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함으로 온 인류가 타락하게 되었고, 그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3일만에 부활하셨고 다실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함께 하나님께 영광돌릴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