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을 보러 가는 사람들은 누군가 미래의 일을 미리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하지만 미래에 관한 일은 사람의 소관이 아닐 뿐 아니라, 사람이 미리 알 수도 없는 일입니다. 여기에 성경의 권위를 믿지 않는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점 보러 가는 사람들의 오류가 놓여있습니다. 후자는 예수 믿는 일을 점을…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한 작가가 진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 중에 교회 예배에 참석해서 아주 뛰어난 설교가의 설교를 듣게 됩니다. 그는 이런 정도의 내용으로 술회합니다: “그 목사님의 설교는 구구절절이 옳고, 그 표현의 뛰어남은 청중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막힘없이 유창하게 설교하는 그 목사의 입술이 너무도 얄미웠다.” 이는 그 목사님의 책임이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손흥민 vs. 정현? 동네 축구를 할 때에도 누구와 같은 팀이 되는가가 중요합니다. 저도 대학 다닐 때 축구를 “조금” 했지만 손흥민 선수와는 비교할 수 없죠. 그러므로 모두가 저보다는 손흥민 선수와 같은 편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항상 예수님 편에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22장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한 반응을 보게 됩니다. “혼인 잔치를 베푼…

최대의 신비이며 가장 완벽한 조화! 우리 주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또한 역설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맞은편 마을로 가서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마 21:2)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주권자의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내십니다: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마…

아이들이 어릴 때에 혼자들을 수 없는 무거운 물건을 아빠가 같이 들어주면서 아이를 칭찬합니다: “야, 우리 아들 힘도 세다!” 그러면 아들은 자기 힘이 센 줄 알고 아주 기분 좋아합니다. 이 이야기는 은혜로 시작되어, 은혜로 진행되며, 은혜로 완성되는 믿음 생활의 원리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의 노력과 땀이 필요하지만, 주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조금 들어올리는 시늉만 하고 주저…

사람의 얕은 생각을 뛰어 넘는 그리스도의 복음! 마태복음 20장에는 우리가 잘 아는 포도원 품꾼들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주목할 것은 품꾼들이 일이 없어 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일감이 없어서 그저 서있었습니다. 그들은 호소했습니다: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마 20: 7). 특이한 점은 품꾼들이 일을 한 시간의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을 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는 (마19:24) 말씀의 참된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사역하시던 당시에 “바늘 귀”라는 문이 있다는 설명은 고증 상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즉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

우리 주님께서는 가끔 과장법을 사용하십니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 네 눈 속에 있는 들보”가 한 예입니다. 또 다른 예는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는 (마 18:9) 말씀입니다. 4세기의 경건한 신학자 오레겐(Origen)은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아드리고 성적인 범죄를 짓지…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꽤나 상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능력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요구하는 정도의 능력을 마땅히 갖췄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에 들리는 소리입니다. 프로 축구 선수, 궁인회계사, 의사, 수학 교사 등 각기 지니고 있어야할 실력이 있어야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됩니다. 변화산 상의 사건에 관한 기록에 이어 마태는 제자들의 무능함을 보도합니다: “내가…

본적을 기억하십니까? 유학오기 직전에 저의 본적지를 방문해 인사를 드리고 떠나 온 기억이 납니다. 본적지는 땅에 있는 우리 존재의 뿌리입니다. 교회의 본적이 있다면 빌립보 가이사랴일 것입니다. 적어도 지리적인 면에서 그렇다고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피조물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 예수님께서는 피조물에게 가장 고귀한 선물을 주십니다: “내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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