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학자 슈내블에(E. Schnabel) 의하면 누가는 바울을 “상대방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 용기있는 철학자”가 아니라 “지적이고 용기있는 선교사”로 그려즙니다. 바울은 당시 그 지역 최고의 권력을 지닌 그리고 로마를 대변하는 총독 벨릭스에게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행 24:25). “의”는 “윤리적인 의미에서의 적절한 행동” 및 “법적 의미에서 정의”를 뜻합니다. 또한 “의를 행하는 사람들을 보상하시며 불의하게 행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각 개인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를 성취한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절제”는 “쾌락과 욕망을 정복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에 의하면 자기 훈련을 통해 이룩할 수 있지만,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필요로 하며, 바울의 가르침에 의하면 신자들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열매”입니다. “장차 오는 심판”은 사람들의 “행동에 따라 사람들을 보상하시든지 또는 정죄하시는 심판의 날”을 지칭합니다. 벨릭스는 바울의 선언을 들으면서 자신의 “강탈, 탐욕, 그리고 정욕”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좌우에 날선” 예리한 칼과 같이 복음은 벨릭스의 양심을 파고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뇌물에 눈이 먼 상태에, “의”와 “절제”와 거리가 먼 그래서 “장차 오는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무지하고 미련한 선택 속에 머물게 됩니다. 성령님의 목소리는 지금도 친절하게 그리고 힘있게 우리 영혼을 향해 들려옵니다. 예수님을 믿은 우리, 그리스도의 보혈에 뒤덮힌 우리에게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은 복된 소식이며 그렇게 우리 귀에 들려옵니다. 하나님께서 내 속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증거로서의 의와 절제 그리고 주님을 직접 만나다고 하는 의미에서의 장차 오는 심판! 이것이 우리 인생 철학이며 우리 인생의 틀을 잡아줍니다. – 은혜와 영광 교회 정현 목사 (ggkcc.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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